아프니까 청춘이다. 3

아프니까 청춘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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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 사람들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고통을 즐겨라. 2)
 
 

5월부터는 샘플 작업을 하다보니 밤늦게까지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구나 지치고 몸이 피곤한듯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내 작업대앞에서 센딩작업만 했지만 이제는 투입쪽에 가서 그쪽일도
도와야 했다.
왜냐면 새로 들어온 샘플인 고.휘.도.는 센딩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팀이었지만 함께 일을 했던적이 없어서 서로가 엮일 필요성도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다른 제품을 할때는 몰라도 고휘도를 하게 되면 같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도 잘해주셨던 왕이모랑, 새로 들어 온 언니도
나와 말을 하지도, 걸지도 않는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직장에서의 <왕따>라고 하는것 같다.
학교에서만 왕따가 존재하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보니 직장도 예외는 아닌것 같았다.
처음에는 말을 걸지 않더니 나중에는 내가 일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또다시 작업장에서 떨어진 사포실에 가서 사포만 쳐야 했다.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사무실에 있는 품질감독 차장님이 몇번씩이나 나를
불러서 사출직장에 가서 일을 시킨다.
그럴때마다 우리 팀원들은 나보고 어디에 갔었느냐고 물었고, 다른 과에서 일하는
분들은 왜 센딩을 하지 않고 사출직장에 와서 일하냐고 물었다.
 센딩일이 많지가 않아서 그런다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창피하고 쪽 팔렸던그때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도 그럴것이 80~90명이나 되는 우리 회사에 센딩하는 사람은 몇명밖에 되지 않는데
자꾸만 밖으로 나다니는 내가 이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 ...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보다 회사에 더 늦게 들어 온 외국인들도 다 일을
하는데 오직 나만은 밀컬레질을 하고, 아니면 화장실 청소를 해야만 했다.
그것밖에는 내가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밀컬레(밀대)로 청소하기를 두달동안... 그동안에 나는 정말로 많은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내가 상처를 입고 억울하다고 해도 직장안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안되는데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고 덤볐으니 ...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누구한테나 똑같이 잘해보려고 하다보니 어려울때, 힘들때면
내 마음을 터놓기도 하고 받아줄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생각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이모가 나를 내리 누르고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때에도 나 하나만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였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는 점점 쌓이고 이모의 말에 모두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밖에
보일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늦게 들어 온 태국여잔한테 센딩을 시킨다고 내가 불평을 부린다고 하면 모두가 믿었고, 내가 이렇게 된 건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라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비워야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일방적인 말에도 믿었던 것같았다.
 
그래도 내가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워 할때 내게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하기전에 나보고 이제 살다보면 더 힘든 날들이 많겠지만 강하게 살라고, 함께
일하면서 잘 챙겨주면 좋겠지만 그래도 잘 이겨낼거라고 힘을 주었던 언니,
마음을 비우고 항상 웃으면서 살라고, 아무리 나쁜 적이라도 친구로 만들라고 하셨던
선과장님,
외딴 곳에서 혼자 사포를 칠때면 음료수를 몰래 손에 쥐어주며 <힘내세요.>라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던 기사님,
악을 쓰는 이모를 차분하게, 의미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그남자씨, 세월이 약입니다.
참고 열심히 살아가느라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거예요.>라고 말씀해주셨던 아저씨.
낯설고 물설은 곳이어서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서자란 나를 이해해주고 잘 이끌어주셨던 좋은 분들이 곁에 계셔서 그나마 잘 이겨낼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내 아들을 바라보면 힘든줄도, 고달픈줄도 모르고
앞만 보면서 달려왔던 그 나날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루종일 역 대합실의 청소하는 아줌마처럼 작업장의 바닥을, 화장실을 청소해야 하는
그 나날들을 아들애는 이 못난 엄마와 함께 해주었다.
힘든 몸을 이끌며 집앞까지 오면 나를 기다리는 아들애의 마음처럼 밝고 따스한 불빛이
창밖을 환하게 비쳐준다.
그럴때면 집에 올라가지 않고 아들애를 불러낸다.
<강아지야, 엄마야~ 어서 내려 와.>
어린것의 손을 꼭 잡고 슈퍼에 가서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내일은 또 새우깡에 두유를
사가지고 어느 아파트단지에 있는 놀이터의 그네에 몸을 싣고서 하루동안에 못다 한
모자의 대화를 나누었다.
밤하늘의 무수하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느라면 내 마음이 그리도 평온해질수가
없었다.
그럴때면 드라마 <싸인>에서 술에 취한 김아중씨가 박신양에게 겁도 없이 내뱉던
말이 생각난다.
<야~ 이 자식아, 일만 일이라고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때로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란 말이야>~~~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2
총알  2012.08.01 12:29  
어찌보면 한국은 너무나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도전을 이겨내고 멋찐모습으로 등장하는 님의 다음글을 기대합니다. 힘내세요!
그남자  2012.08.01 14:30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대한민국 역시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어디가나 진심은 통하겠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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